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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어떤 조명 받느냐에 따라 오렌지 주스 맛이 달라져요”
[톡톡톡] “어떤 조명 받느냐에 따라 오렌지 주스 맛이 달라져요”
  • 푸드앤메드
  • 승인 2016.08.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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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②국내 식품 관능평가의 선구자 ‘센소메트릭스’ 조완일 대표





똑같은 음식을 먹고도 나이 든 엄마는 “싱겁다”, 딸은 “짜다” 말한다. 각각 짜고 맵고 달고 신맛의 정도가 다르다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수치로 결과를 내는 기계와 달리 인간은 오감을 활용해 주관적인 기준에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제품에 대한 평이 다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기계가 도출하는 결과와 인간의 판단을 융합하면 일반적으로 대중이 생각하는 평균치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특정 대상에 대한 평가와 통계 분석을 통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관능검사라 한다. 국내에도 관능검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센소메트릭스’란 기업이 있다. ‘푸드앤메드’는 센소메트릭스를 설립하고 10여 년간 관능검사에 몰두해 온 조완일 대표를 만났다.


운명처럼 뛰어든 관능검사의 세계


‘관능검사’란 말 자체가 생소하다. 아직 국내엔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이 드물고 큰 기업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 분야는 아직 성장 가능성이 큰 일종의 블루오션이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실험으론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외부 관능검사 기업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데다 관능검사가 이용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식품에서부터 화장품ㆍ자동차ㆍ생활용품 등 대부분의 제품을 관능검사를 이용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도 생소한 이 분야에 조 대표는 10여 년 전에 발을 들여놓았다.

조 대표는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 학부 수업 때 처음 관능검사란 용어를 접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관능검사 과목을 수강하게 됐고 통계분석 시설 설비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점차 관심을 갖게 됐다. 석사 졸업 후 오리온 식품연구소에 입사했다. 여기서 그의 관능검사에 대한 호기심은 더 짙어졌다.

당시 오리온은 국내에 전자 코(e-nose, 냄새를 구분하고 화학적 성분을 분석해 내는 전자 장치)가 소개되자 발 빠르게 구입해 실험에 들어갔다. 제품 평가를 할 때 사람의 판단과 전자 코가 내놓는 결과를 합치니 각각 단독으로 결론을 냈을 때보다 훨씬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됐다. 전자 코와의 만남을 통해 조 대표는 자신이 기초 화학 연구보다는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에 더 관심과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됐다.

그 후 오리온 근무 당시 인연을 맺었던 한 소프트웨어 업체에 입사해 관능검사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제작 업무를 맡게 됐다. 그 즈음 본격적으로 관능검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조 대표가 처음 회사의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패널모집 시스템이 없고 평가를 의뢰하는 기업에서 제시하는 금액도 크지 않아 주로 대형 마트에서 설문 등의 방법으로 관능검사를 진행했다. 마땅한 공간과 피실험자 섭외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온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마트에서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여 검사참여 사례품으로 나눠줬다. 마트 입장에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다. 제대로 관능검사를 진행하기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관능검사가 진행되는 센소메트릭스 실험실 ⓒ 센소메트릭스

조 대표는 관능검사에 대한 기업의 생각이 바뀌면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자 시설 투자를 결심했다. 그때부터 목적에 맞는 실험자를 모집ㆍ선별하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대로 실험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결과도 더 정확해졌다. 평가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을 배제하는 등 나름의 실험 설계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렌지 주스의 맛을 평가한다고 할 때 조명을 통해 오렌지 주스 색깔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이다. 소비자는 주스의 색이 노랄수록 달다고 판단한다. 이 경우 붉은 조명 아래에서 관능검사를 실시하면 오렌지 주스의 노란빛이 모두 베이지색으로 보여 색에 의한 영향을 배제할 수 있다. 센소메트릭스의 실험실엔 붉은색ㆍ파란색ㆍ녹색 조명이 준비돼 있다.


사람 다루는 일이라 황당한 일도 경험


조 대표에게 10여 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며 경험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관능평가는 대부분 의뢰한 기업과 비밀유지 서약을 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며 “재미있는 점이라면 우리가 직접 제품을 평가하고도 어떤 제품을 평가 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보통은 관능검사가 필요한 식품회사의 연구개발(R&D) 부서와 함께 일을 한다. 기업이 관능평가를 의뢰할 때는 제품명 없이 A01ㆍA02와 같이 임의로 번호를 붙여서 보낸다. 개발 중인 제품의 경우 향이 0.01% 첨가됐을 때와 0.02% 첨가됐을 때의 차이를 알아봐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조 대표가 실험을 해놓고도 어떤 제품을 관능평가했는지 잘 모르는 것은 그래서다. 조 대표는 본인이 겪었던 황당한 피실험자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중에 파는 생수를 (관능)검사한 적이 있는데, 실험 후 갑자기 이가 시리고 아프다며 병원비를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 부당한 요구인 것 같아 브랜드명을 시원하게 밝히고 문제가 없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기업과의 비밀유지 약속 때문에 어디 생수라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병원비 십 몇 만원을 물어줬다. 답답했다.”

물을 마신 뒤 배탈이 난 것도 아니고 이가 상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피실험자가 두 세 차례 병원 검진을 다녀왔다며 내민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그대로 내줬다. 실험 전 분명히 알레르기가 없다고 했던 사람이 실험 후 알레르기가 생겼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10년 내에 ‘맛 지도’ 만드는 게 꿈


요즘 식품 회사는 제품 출시 전 대부분 관능검사를 실시한다. 관능검사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센소메트릭스는 30여개의 주요 식품회사와 화장품업체ㆍ주방 가전 업체를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의 관능검사 파트너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관능검사 전문기관으로 독보적 입지를 굳히고 있는 센소메트릭스의 10년 계획을 물었다.



센소메트릭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제품의 관능성 특성을 파악한다. ⓒ 센소메트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조 대표는 “다양한 식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맛 지도’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말하는 맛 지도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지도 위에 맛집 위치를 찍어 알려주는 지금의 맛 지도와는 다른 개념이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른 맛 평가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맛ㆍ향ㆍ모양ㆍ질감 등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조건을 수치화해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두유를 소개할 때 단맛이 강한지 약한지, 걸쭉한지 묽은지 등으로 기준을 나눠 ‘단 맛이 강하면서 걸쭉한 두유’,‘담백하면서 묽은 두유’라고 알려 소비자가 객관적으로 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맛 지도가 완성되면 소비자들의 입맛도 다양해 질 수 있을 거라 예상한다. 새로운 맛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니 다양한 음식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기대다.

“센소메트릭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관능검사를 바탕으로 돈을 벌면서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조 대표의 목소리에 유독 힘이 들어갔다.

도연희, 정은이, 이문예 기자 moonye23@foodnmed.com

(저작권 ⓒ ‘당신의 웰빙코치’ 데일리 푸드앤메드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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