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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안전 이슈에서 존재 자체보다 양이 더 중요한 이유?
식품안전 이슈에서 존재 자체보다 양이 더 중요한 이유?
  • 방상균
  • 승인 2019.03.18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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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품이든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어

-식품 안전 무관용 주의 '델라니 조항'은 이미 폐기

 

식품안전 이슈는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그만큼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요즘 요도감염 예방ㆍ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웰빙식품으로 인기 높은 크랜베리도 과거에 미국에서 ‘블랙먼데이’를 경험했다. 미국 보건부가 1959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오레곤과 워싱턴 주에서 생산된 크랜베리에 제초제(농약의 일종)인 아미노트리아졸이 들어 있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다. 크랜베리의 매출이 추락하자 정부 공무원들이 “먹어도 괜찮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소비자의 외면과 불신은 꽤 오래 지속됐다. 이 사건은 식품에 잔류하는 화학물질이 대중에 공포심을 심어준 첫 사례로 간주된다.

 클랜베리 파동의 전주곡은 이보다 1년 전인 1958년 제임스 델라니 하원의원(뉴욕ㆍ민주당)이 발표한 델라니 조항(Delaney clause)이었다. 기존의 ‘식품ㆍ의약품ㆍ화장품법’을 개정한 델라니 조항의 핵심은 소비자가 먹는 모든 식품에 발암물질은 일절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관용(zero tolerance) 주의였다. 발암성이 의심된 농약ㆍ식품첨가물ㆍ동물용 의약품이 소량이라도 함유된 식품은 식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델라니 조항은 당시 미국 소비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고 그의 선거 득표율을 높이는데도 일조했다. 발암물질이 전혀 없는 식품만을 공급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소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1988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무시할 수 있는 위험’(de minimis risk)이란 신 개념을 도입해 델라니 조항의 ‘벽’을 허물었다. 설령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양이 극히 적어 사람의 건강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사용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델라니 의원이 활동하던 1950년대엔 발암물질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의 분석 한계가 ㎎(1000분의 1g) 수준이었다. 만약 발암물질로 판정된 농약이 ㎏당 수㎎ 잔류한 식품을 먹는다면 사람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미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지금은 MS-GC 등 분석 장비의 발달로 ㎍(100만분의 1g), ng(10억분의 1g), pg(1조분의 1g)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엔 ‘모르는 게 약’이었던 유해물질들이 이제는 백일하에 드러나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이옥신이 좋은 예다. 다이옥신의 검출 량은 수pg 수준이어서 과거엔 그런 물질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델라니 조항이 용도 폐기되면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위해도 평가(risk assessment)다. 기본적으로 모든 식품엔 발암물질ㆍ중금속ㆍ식품첨가물ㆍ잔류농약 등 소비자들이 우려하는 화학물질이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그래도 먹어도 되는지 득(혜택)과 실(위험)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어떤 식품이든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김치를 항암식품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니트로소아민 등 발암물질도 들어 있을 수 있다. 또 사과는 ‘의사의 얼굴을 파랗게 질리게 하는(너무 건강에 이로워 환자가 줄까봐) 과일로 통하지만 아스피린의 원료물질인 살리실산, 소독 성분인 아세톤ㆍ이소프로판올도 함유돼 있다. 그렇지만 김치나 사과를 우리가 즐겨 먹는 것은 손익계산에서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의 의사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는 이미 500여 년 전에 ‘독은 곧 양’(Dose is poison)이라고 했다. 세상에 독이 없는 것은 없으며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물도 극단적으로 과량 섭취하면 독이 된다. 이제 우리 소비자의 식품안전에 대한 인식도 ‘정성’(유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에서 ‘정량’(얼마나 들어 있는지)으로 업그레이드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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