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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식품 시리즈 - 4. 우리 선조에게 메밀은 오방지영물
장수식품 시리즈 - 4. 우리 선조에게 메밀은 오방지영물
  • 박태균
  • 승인 2019.05.30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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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식품 시리즈 - 4. 우리 선조에게 메밀은 오방지영물
장수식품 시리즈 - 4. 우리 선조에게 메밀은 오방지영물

-다이어트 중인 사람의 대체 곡물로 인기
-비타민 P라고 불리는 루틴이 대표 웰빙 성분 


  “산 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제목인 ‘메밀꽃 필 무렵’의 한 대목이다. 메밀꽃은 초가을에 핀다. 그러나 음식 재료로서의 메밀은 겨울이 제철이다. 메밀국수ㆍ메밀묵ㆍ꿩메밀칼국수ㆍ꿩메밀만두ㆍ메밀쌀죽ㆍ메밀수제비는 겨울과 잘 어울린다. 
우리 선조의 눈에 비친 메밀은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이었다. 파란 잎, 흰 꽃, 붉은 줄기, 검은 열매, 노란 뿌리 등 오색(五方色)을 지녀서다. 과거에 부녀자가 겨울밤에 모여 메밀묵 추렴을 한 것은 오색을 두루 갖춘 메밀을 먹으면 아들을 잘 낳는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과거에 메밀은 구황(救荒)작물을 대표했다. 흉년이 들 때는 메밀대를 삶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메밀가루는 뜨거운 물에 타면 곧바로 먹을 수 있어서 들에 마소를 돌보러 나갈 때 비상식량으로 이용했다. 씨를 뿌린 뒤 2개월만 기다리면 거둘 수 있는데다 추운 곳ㆍ고지에서도 잘 자라는 등 메밀은 구황작물의 조건을 잘 갖췄다.  
 요즘엔 미식(美食)과 웰빙을 위해 즐겨 먹는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대체 곡물로도 인기가 높다. 열량이 특별히 낮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곡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열량이어서다(100g당 알곡 374㎉, 가루 359㎉). 특히 삶은 메밀국수와 메밀묵의 열량은 100g당 각각 132㎉ㆍ58㎉에 불과하다. 이 정도는 체중 감량중인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열량이다. 
한방에선 오래 전부터 메밀을 약재로 썼다. 
중국의 고의서인 '본초강목'엔 “메밀은 위를 실(實)하게 하고 기운을 돋으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찌꺼기를 없애준다”고 기술돼 있다. 
'동의보감'에선 “비ㆍ위장에 1년 쌓인 체기가 있어도 메밀을 먹으면 내려간다. 메밀 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며 귀와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메밀의 대표 웰빙 성분은 루틴이다. 루틴은 비타민 P라고도 불린다. 항산화 성분이어서 혈관에 쌓인 유해산소를 없애 혈관의 노화를 막아준다. 뇌졸중ㆍ동맥경화 환자에게 메밀이 권장되는 것은 이래서다.  
루틴은 혈압도 내려준다. 우리 몸에 염분이나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앤지오텐신-Ⅱ(혈압을 높이는 물질)가 분비돼 혈압이 올라간다. 이때 루틴은 앤지오텐신-Ⅱ의 활성을 낮춘다. 고혈압 환자는 메밀가루를 물에 탄 뒤 꿀을 넣어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메밀은 당뇨병 환자에게도 추천된다. 루틴이 인슐린(혈당을 낮추는 호르몬) 생산 공장인 췌장의 활동을 도와서다. 
루틴은 우리 몸에서 일절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전량 식품을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루틴이 메밀 외에 감자ㆍ아스파라거스ㆍ버찌ㆍ감귤류ㆍ팥 등에도 들어 있다. 
수용성(水溶性)인 루틴은 메밀을 삶으면 물에 우러나온다. 전문가들이 메밀국수의 국물 등 메밀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마시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루틴을 빼면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메밀의 소중한 영양소이다. 100g당 단백질 함량이 11.5g으로 같은 무게의 두부(9.3g)보다 높다. 단백질의 질로만 따지면 식물성 식품 중에선 단연 최고 수준이다. 또 메밀에 든 리신ㆍ트레오닌ㆍ트립토판은 쌀ㆍ보리ㆍ밀 등엔 부족한 아미노산이다. 
식이섬유 함량은 100g당 9.5g에 달한다. 식이섬유는 변비를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그래서 예부터 메밀을 변통(便通)에 이로운 곡물로 쳤다. 식이섬유는 희고 고운 가루보다는 겉껍질이 조금 남은 거뭇거뭇한 가루에 훨씬 많다. 
메밀가루엔 전분분해효소 등 각종 소화효소가 많이 들어있다. 당연히 소화가 잘 된다. 그러나 가루 상태로 장기간 저장하면 이들 효소의 작용으로 메밀가루 고유의 특성이 사라진다. 예부터 강원도 산골에서는 도토리 모임이라고 해서 밤참으로 메밀국수나 메밀묵을 먹었다.  메밀국수 등 메밀음식을 만들 때는 새로 빻아서 만든 가루를 써야 제 맛이 난다. 메밀묵은 메밀녹말로 쑨 묵인데 여름이면 묵사발이라 하여 메밀묵을 굵게 썰어 담고 시원한 김칫국물을 부어낸다. 겨울엔 뜨거운 장국에 메밀묵을 말기도 한다. 
 메밀의 약점은 두 가지다. 첫째, 껍질 부위에 살리실아민 등 독성물질이 소량 들어 있다. 이 독성물질의 해독제가 무다. 메밀국수ㆍ메밀냉면에 무생채나 무즙이 꼭 따라 나오는 것은 이래서다. 둘째, 성질이 차다는 것인데 이는 강점도 된다. 평소 몸이 찬 사람이 메밀을 과다 섭취하면 설사ㆍ소화 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몸이 찬 사람은 열성 식품인 겨자를 넣은 뒤 따뜻한 국물을 부어 온면으로 먹는 것이 좋다. 속 열이 많은 사람은 메밀ㆍ오이ㆍ배로 열을 식힐 수 있다. 셋 다 냉성 식품이다.  
메밀은 버릴 것이 없는 곡물로도 유명하다. 메밀의 연한 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껍질은 예부터 베갯속으로 이용했다. 메밀껍질 베개는 잠을 잘 오게 하는 것으로 입소문이 났다. 최근엔 미국에서도 메밀 베개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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