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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틴산은 현미의 ‘배신’인가? 
피틴산은 현미의 ‘배신’인가? 
  • 문현아
  • 승인 2019.07.10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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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틴산은 현미의 ‘배신’인가? 
피틴산은 현미의 ‘배신’인가? 

  -피틴산은 현미 조리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돼
 -FDA도 피틴산을 GRAS(안전) 리스트에 포함시켜

 
 수년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쌀의 문제’(The Trouble With Rice)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산 쌀에 비소ㆍ카드뮴 등 중금속이 오염돼 있다는 것이 기사 내용의 핵심이었다. 대중에게 경고를 내릴 만큼 오염이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특히 현미의 중금속 오염 농도가 최고였다고 지적했다. 
 현미는 왕겨와 겉껍질만 벗기고 속겨(쌀겨)는 벗기지 않은 쌀이다. 도정을 거친 쌀에 비해 중금속ㆍ농약이 잔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순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흰쌀밥과 거친 현미밥 중 어떤 음식이 건강에 더 이로운 가를 놓고 학자 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현미에 그림자가 하나 더 드리워졌다. 비타민ㆍ미네랄과 결합해 이들의 체내 흡수를 방해한다는 피틴산이 100g당 1.3g가량 들어 있다는 것이다. 피틴산이 단백질 분해효소인 펩신, 당(糖) 분해효소인 아밀라아제의 분비를 억제해 음식의 소화를 방해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미가 대중의 기대를 ‘배신’한 것일까? 암 치료에 이로울 것으로 여겨 일부러 현미밥을 지어 먹던 암환자는 당장 현미식을 중단해야 하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현미 섭취의 장점(혜택)과 단점(위험)을 저울질하면 추(錘)가 장점 쪽으로 기운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의 하나인 피틴산을 독성 물질로 낙인찍은 것부터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폴리페놀ㆍ셀레늄ㆍ피틴산 등 현미에 든 파이토케미컬은 식물이 각종 미생물ㆍ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물질이므로 본질은 ‘독’이다. 파이토케미컬은 몸 안에 들어가 세포의 손상을 억제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등 ‘약’으로도 작용한다. 벌침은 ‘독’이지만 한방의 봉침(蜂針)요법에 쓰이는 벌침은 ‘약’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도 피틴산을 독으로 규정하지 않고, GRAS(일반적으로 안전한 물질)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피틴산이 신장 결석을 유발하는 지도 불분명하다. 신장 결석을 막아준다는 정반대의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피틴산은 현미의 조리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된다. 2011년 FDA는 120도에서 1시간 정도 가열하면 식품 내 피틴산의 농도가 최초의 20%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밝혔다. 2008년 중국 연구팀은 발효를 통해 현미의 피틴산 농도를 96%나 감소시켰다. 현미를 물로 씻거나 발아시켜도 피틴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피틴산은 현미 뿐 아니라 건강에 이로운 콩ㆍ깨ㆍ씨앗류에도 들어 있다. 
 현미의 중금속ㆍ농약 잔류 문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설령 극소량 남아 있다고 해도 유해물질 배출에 효과적인 식이섬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현미의 식이섬유 함량은 백미의 세배 이상인데 이는 단점도 된다. 현미밥만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식이섬유 탓이다. 현미밥은 대강 씹어 넘겨선 안 되고 최소한 10번 이상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평소 배탈이 잦다면 씹는 횟수를 더 늘리는 것이 맞다. 현미 죽이나 현미 미음을 끓여 먹는 것도 소화에 이롭다.  
 피틴산이나 중금속ㆍ농약에 대한 우려로 섭취를 피하기엔 현미는 너무나 소중한 식품이다. 비만ㆍ변비ㆍ당뇨병ㆍ혈관질환ㆍ암 등에 두루 유용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현미를 매주 2번 이상 먹으면 이보다 적게 먹는 사람에 비해 당뇨병 위험이 11% 낮았다고 ‘내과학 기록’(2010년)에 발표했다. 현미엔 씨눈(배아)이 남아 있으며 예부터 배아식품은 항암 식품으로 통했다. 심장병ㆍ뇌졸중ㆍ동맥경화 등 혈관질환 예방에도 이롭다. 혈관 건강을 돕는 불포화 지방이 쌀겨와 씨눈에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다. 문현아 moon@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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