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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에 도토리? 내 식탁에 도토리!
개밥에 도토리? 내 식탁에 도토리!
  • 박태균
  • 승인 2020.12.23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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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사 멎게 하고 중금속 제거
- 구황작물에서 웰빙 식품까지…도토리의 변신은 무죄

 

 

 

“도토리는 산에서 들을 내다보면서 열매를 맺는다”는 옛말이 있다. 도토리가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흉년이 들 것 같으면 열매를 많이 맺어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이라도 먹게 한다는 것이다.

도토리의 과거 용도는 구황(救荒)작물이었다. 고려 충선왕은 흉년이 들자 반찬 수를 줄이고 수라상에 도토리를 올리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은 흉년에 굶주린 백성에게 도토리 스무 말을 보내면서 “흉년엔 도토리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풍년이 들면 여지없이 ‘개밥에 도토리’다. 개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자연의 도토리는 상수리ㆍ굴참ㆍ졸참ㆍ떡갈ㆍ신갈ㆍ갈참나무 등 참나무의 열매다. 겉이 단단한 견과류의 일종으로 속에 커다란 씨가 있다. ‘고만고만하다’는 의미인 ‘도토리 키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모양은 타원형ㆍ구형ㆍ난형 등 다양하다. 흔히 다람쥐의 음식으로 알려졌지만, 멧돼지가 선호하는 먹이다.

도토리는 아주 옛날부터 식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의 주거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식물이다. 1974년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기원전 5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 신석기시대 주거지가 발굴됐다. 이 주거지에서 탄화된 도토리 알 20톨이 발견되기도 했다.

요즘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이어트ㆍ웰빙 식품으로 찾는 귀하신 ‘몸’이다.

탄수화물(100g당 46.7g)ㆍ지방(3g)ㆍ단백질(4.4g)이 고루 들어 있는 데다 대표 음식인 도토리묵의 열량이 낮아서다. 열량이 도토리 생것은 100g당 221㎉, 녹말은 327∼336㎉에 달하지만, 도토리묵은 43㎉에 불과하다.

도토리에 든 탄수화물과 지방의 대부분이 녹말(전분, 복합당)과 불포화 지방(혈관 건강에 유익)이다. 도토리 가루는 녹말 덩어리나 다름없다.

웰빙 성분으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아콘산(酸)이다. 국내 학자의 연구를 통해 아콘이 체내에 쌓인 중금속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서다.

생도토리를 먹기 힘든 것은 떫은맛 성분인 타닌 때문이다. 타닌은 카테킨과 동일 물질이고,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이다. 깍지를 벗기고 빻아 물에 여러 번 우려내면 타닌은 제거된다. 타닌은 감ㆍ녹차에도 다량 함유돼 있는데 변을 단단하게 하여 설사를 멎게 한다. 다량 섭취하면 장내 수분을 빨아들여 변비를 유발한다. 변비ㆍ빈혈 환자에게 도토리를 과다 섭취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그래서다.

도토리의 껍질을 까서 잘 말린 뒤 절구로 빻은 것을 물에 오래 담가두면 떫은맛을 우려낼 수 있다(타닌 제거). 앙금과 물이 분리되면 웃물만 따라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친 뒤 가라앉은 앙금을 잘 말리면 하얀 가루가 얻어진다. 도토리 전분(녹말가루)이다. 이 가루를 물에 풀어 풀을 쑤듯이 끓이다가 끈적끈적하게 엉길 때 그릇에 부어 식힌 것이 도토리묵이다. 도토리수제비ㆍ도토리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메밀묵이 겨울철 간식거리라면 도토리묵은 사철 먹거리다. 도토리 가루를 밀가루와 함께 반죽하면 국수ㆍ수제비ㆍ부침개 등 다양한 도토리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도토리를 우려서 그 앙금으로 만든 도토리다식(상실다식)은 기침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어 ‘기침막이 떡’이라 했다.

살 때는 알이 충실한 것을 고른다. 물에 담갔을 때 무거워서 가라앉는 것이 양질이다. 물에 뜨면 벌레 먹은 것이기 쉽다.

도토리는 2주 이상 방치하면 벌레가 생기기 쉬우므로 껍질을 벗긴 뒤 말려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찬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뺀 후 신문지에 한 번 싼 후 비닐에 다시 한 번 더 싸서 냉장실에 둔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6개월에서 2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

‘동의보감’엔 “도토리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떫으며 독이 없다”고 기술돼 있다. “설사ㆍ이질 등을 낫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여 몸에 살을 오르게 한다”고도 했다.

중국의 고의서인 ‘본초강목’엔 “곡식과 과실의 좋은 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도토리만 먹어도 보신이 필요 없다”고 적혀 있다.

국내 유통되는 도토리의 약 10% 이내만 국산이다.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된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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