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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를 위한 씨암탉부터 ‘치느님’까지…닭에 대한 모든 것
사위를 위한 씨암탉부터 ‘치느님’까지…닭에 대한 모든 것
  • 박태균
  • 승인 2021.05.01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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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 마세요’…억울한 산란계, 단단하고 쫄깃한 맛 가져
- 환경∙식량안보에도 기여하는 현대인의 ‘치느님’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 준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씨암탉은 ‘백년손님’인 사위가 처가에 가면 먹는 음식이었다. 장모에게 가장 귀한 손님은 사위였고, 딸을 잘 부탁한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아낌없이 씨암탉을 잡아 접대했다. 농가 입장에선 씨암탉을 잡는다는 것은 병아리를 깔 수 있는 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집안의 중요한 재원 하나를 버린다는 의미다. 손님으로 가서 그 집 씨암탉을 얻어먹었다면 최고의 대접을 받은 셈이다.

우리 조상에게 닭은 귀신을 쫓고 새벽을 알리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 한영이 쓴 ‘시경’(詩經)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선 닭을 문(文)ㆍ무(武)ㆍ용(勇)ㆍ인(仁)ㆍ신(信) 등 다섯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동물이라고 했다. 장모가 사위에게 바라는 덕목이 모두 들어 있으니 씨암탉을 먹고 함께 행복하게 살라는 친정어머니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는 씨암탉이 낳은 계란도 귀하게 여겼다. 친척의 생일이나 결혼ㆍ환갑 때 짚으로 계란 꾸러미를 싸서 부조를 했다. 닭은 알을 하루에 하나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모아두었다가 10개가 되면 한 꾸러미를 만들었으니, 모으는 마음의 정성도 대단했다.

결혼식 초례상에도 반드시 닭이 등장한다. 신랑ㆍ신부가 닭이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닭을 청홍 보자기로 싸서 상 위에 놓거나 동자가 안고 옆에 서 있었다. 닭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한 것이다. 혼인 의례가 끝나고 신부가 시댁 쪽에 폐백례를 드릴 때도 닭고기를 놓고 절을 한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중요한 의례인 혼인식에 닭이 등장하는 것은 닭을 길조(吉鳥)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쇠고기ㆍ돼지고기도 있는데 굳이 초례상에 씨암탉을 선택한 것은 닭에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유학(儒學)의 삼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에서 닭은 양조(陽鳥)라 했다. 중국의 고의서인 ‘본초강목’엔 닭이 양기를 제공한다고 기술돼 있다. 닭은 양기가 넘치는 동물인데 게다가 알을 낳는 씨암탉이니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다.

과거엔 씨암탉은 중요한 손님에게나 대접하는 음식이었으나 요즘엔 별로 인기가 없다. 늙은 닭이나 폐계를 이용한 음식이어서 맛이 질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요즘 ‘씨암탉’은 과거에 비하면 훨씬 어린 닭이다.

닭의 자연 수명은 20∼30년이다. 실제론 10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가 통닭ㆍ삼계탕으로 이용하는 육계는 100일도 안 된 병아리가 대부분이다.

닭은 도축 시기가 짧아 나이를 보통 1주 단위로 계산한다. 부화 후 8주 된 0.8~1.0㎏의 닭은 대개 삼계탕용으로 사용된다. 부화한 지 10주 된 1.6~2.0㎏의 닭은 주로 통닭용ㆍ백숙용으로 사용한다. 산란계(암탉)나 번식용 종계(수탉)은 일반적으로 태어난 지 2년 전후에 도축된다. 자연적인 수명이 20∼30년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아직 젊은 닭이지만 흔히 묵은 닭ㆍ폐계로 지칭된다. 폐계로 분류하기엔 아직 한참 ‘청춘’이지만 말이다.

국내에선 폐계를 늙어 죽은 닭이나 그 전에 기력이 다해 오늘ㆍ내일 하는 닭으로 여겨 산란계 고기 요리를 꺼리는 소비자가 많다. 요즘 ‘폐계’ 취급을 받는 산란계는 기력이 떨어져 늙어 죽은 닭이 아니고 2년 전후의 밥만 축내며 알 낳는 것이 더딘 닭을 가리킨다.

과거엔 씨암탉의 나이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계란을 생산해 집안에 경제적 이익을 주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

산란계에서 얻은 고기(산란 성계육)는 정말 질겨서 먹기 힘든 음식일까? 예전엔 씹기 어려울 정도로 질긴 이유가 있었다. 계란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빨리 도축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는 산란계를 강제로 굶겨 알을 낳지 못하게 해 수란관을 쉬게 한 다음 이를 통해 다시 산란율을 높이는 방법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 결과 닭의 도축 시기는 늦어지고 육질은 더욱 질겨졌다. 지금은 산란계의 도축 시기를 일부러 늦출 이유가 없어졌다. 육질이 적당한 시기에 닭이 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산란계 고기는 살이 단단하고 쫄깃하며 맛이 좋고 양도 푸짐하다. 조리만 잘하면 토종닭 못지않게 씹히는 맛이 있다. 산란 성계육은 쫄깃한 맛을 즐기는 동남아인에게 인기가 있어 많은 양이 수출되고 있다. 2009년엔 동남아 수출 물량이 많아 폐계닭 파동이 일어나 며칠 동안 폐계요리를 못 파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산란 성계육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유명 음식이 ‘평택 폐계닭’이다. 이 음식은 평택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1년 6개월∼2년 정도 알을 낳은 산란계를 이용해 만든 닭볶음이다. 육계보다 씹히는 맛ㆍ감칠맛이 낫고, 알집의 고소한 맛은 ‘평택 폐계닭’에서만 맛볼 수 있다.

안성군ㆍ평택군 사이 경계에 양계장이 많던 동네, 군(郡)의 경계에 위치해 ‘군계’라 불리던 곳에서 ‘평택 폐계닭’이 유래했다. 지금은 ‘폐계닭’ 거리가 생길 정도로 주변에 많은 식당이 있다. 요즘 한국에선 산란계 고기를 이용한 닭고기 음식이 점점 변하고 있다. 질긴 고기를 연하게 하는 다양한 방법이 연구돼 활용되고 있다. 어떨 때는 적당히 쫄깃쫄깃한 육계를 먹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닭고기는 소ㆍ돼지고기에 비해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해 소화흡수가 잘된다. 우리 선조는 닭을 이용해 백숙ㆍ찜 등 다양한 닭요리를 개발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닭은 고기와 알을 제공하는 것 외에 환경보호와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소중한 식품이다. 닭고기 1㎏을 얻는데 사료가 1.8㎏ 드는 데 비해 돼지고기는 4㎏, 쇠고기는 8㎏의 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닭고기는 백색육(白色肉)을 대표한다. 하지만 모든 부위가 흰 것은 아니다. 다리 살은 붉고 어둡다. 날개에서 가슴에 이르는 살은 희고 지방이 적어 맛이 산뜻하다. 튀김ㆍ찜ㆍ죽을 만드는 데 적당하다. 색이 붉은 넓적다리 살엔 지방ㆍ철분ㆍ콜라겐이 많다. 로스트ㆍ커틀릿에 알맞은 부위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닭고기를 평균 10㎏ 가까이 섭취한다. 국내에서 돼지고기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고기다.

백색육인 닭고기는 소고기ㆍ돼지고기 등 적색육보다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쇠고기ㆍ돼지고기ㆍ양고기 등 붉은색 고기와 소시지 등 식육 가공품을 즐겨 먹는 사람은 덜 먹는 사람보다 암ㆍ심장병에 걸려 숨질 위험이 커지는 반면 닭고기ㆍ오리고기ㆍ칠면조고기 등 흰색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은 덜 먹는 사람에 비해 사망 위험이 오히려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닭고기는 고(高)단백 식품이다. 특히 가슴살의 단백질 함량은 100g당 23.3g에 달한다. 지방ㆍ콜레스테롤 함량은 다른 육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쇠고기보다 담백하고 소화가 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욱이 닭고기의 지방은 껍질 바로 밑에 몰려 있다. 닭고기 지방은 70%가량이 상온에서 굳지 않는 불포화 지방이다. 불포화 지방은 혈관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닭고기를 먹으면 풍(중풍, 뇌졸중)이 생긴다”는 속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닭고기가 뇌졸중의 위험 요인이라고 판단했다면 뇌졸중과 심장병으로 숨지는 국민이 많은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 앞장서서 닭고기 섭취를 말렸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닭고기 등 백색육의 소비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만약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걱정된다면 껍질과 내장 육을 떼어 내고 먹으면 된다.

인기 부위인 날개엔 지방이 상대적으로 많다(100g당 15.2g, 가슴살 0.4g). 다이어트 중이라면 열량이 낮은 가슴살(100g당 102㎉)ㆍ다리살ㆍ넓적다리살 위주로 먹되(날개살은 221㎉), 껍질은 벗기고 섭취한다. 껍질을 벗긴 닭 살코기와 가슴살의 열량은 껍질을 벗기지 않았을 때의 절반 수준이다. 닭 요리를 할 때 기름기를 제거한 뒤 끓는 물에 한번 데치면 지방이 쏙 빠져 열량이 더욱 낮아진다. 닭발에 풍부한 콜라겐은 고혈압약만큼이나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일본 히로시마대학 연구팀은 닭발에서 콜라겐이 함유된 단백질을 추출해 고혈압 쥐에게 먹인 결과 8시간 만에 혈압이 크게 떨어지고 효과가 4주간 지속했다고 밝혔다. 연구 팀은 닭발에 풍부한 콜라겐 단백질이 고혈압약의 일종인 ACE 억제제와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닭발은 콜레스테롤이 적고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 미용ㆍ관절 건강에도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부위다. 골다공증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닭가슴살에도 콜라겐이 들어 있지만, 닭발보다 양이 적다. 닭고기를 섭취해 콜라겐 보충을 바란다면 닭발이 최고의 선택이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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