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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 아이도? 편식과는 다른 ‘푸드 네오포비아’
혹시 우리 아이도? 편식과는 다른 ‘푸드 네오포비아’
  • 박태균
  • 승인 2021.04.10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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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식품에 두려움 느끼는 ‘잡식 동물의 딜레마’ 
- 생후 7개월 무렵부터 시작, 만 2∼7세가 절정기

 

 

 

 

몇 해 전 화제를 모은 영화 “집으로”를 보면 켄터키 치킨을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씨암탉을 잡아 백숙을 해오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처음 본 백숙에 울음을 터뜨리지만, 관객들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문화단절에 따라 ‘킥킥’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치킨과 백숙”의 이 간극은 최근 우리 아이들의 식생활을 생각해보면 무심히 넘기기 힘든 대목이다. 고기를 두 개씩 끼워 넣은 더블 햄버거, 포장지까지 기름이 흠뻑 배어나온 양념 통닭, 햄과 불고기와 치즈를 듬뿍 얹어 구워낸 피자, 우리 입맛이 서양식 식생활과 외식 산업에 점차 길들여지면서 패스트푸드가 가져오는 영양상의 불균형과 소아비만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자녀의 편식 문제로 고민 중인 부모라면 ‘푸드 네오포비아’(food neophobia)와 ‘푸드 브리지’(food bridge)라는 용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푸드 네오포비아는 번역하면 ‘새 식품 혐오증’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 란 책에서 언급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익숙하지 않은 식품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을 뜻한다. 대개 생후 7개월 무렵부터 시작되고 만 2∼7세에 가장 심해지며 그 후론 차츰 완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드 네오포비아는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picky eater)와는 다르다. 입이 까다로운 아이는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요리해주는 등 비위를 잘 맞춰주면 먹는 데 반해 푸드 네오포비아 아이는 달래서 먹이기도 힘들다.  

어린이를 포함한 인류가 푸드 네오포비아를 갖게 된 것은 건강에 해롭거나 치명적인 음식을 섭취하지 않기 위한 잡식동물의 ‘자구책’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에겐 푸드 네오포비아가 필요하지 않다. 자칫 다양한 식품 섭취의 기회만 줄여 영양 결핍ㆍ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채소ㆍ과일 등 웰빙 식품에 대해 네오포비아를 보이는 것은 아이 건강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네오포비아는 대물림하기 쉽다. 핀란드의 가족 28가구와 영국의 쌍둥이 468쌍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각각 66∼69%와 37∼66%에서 유전성이 관찰됐다. 채소 등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아이의 어머니 역시 새 음식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녀가 네오포비아 성향을 보이면 새로운 음식을 제공할 때 아이가 익숙하거나 선호하는 향미를 적극 사용하는 것이 좋다. 부모가 특정 음식에 대해 얼굴을 찌푸리거나 불평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는 부모와 형제ㆍ또래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네오포비아 극복을 위한 전문적인 미각 교육도 필요하다. 

몇 년 전 미국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무조건 채소를 먹으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으니 꾀를 쓰라”는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꾀’가 바로  ‘푸드 브리지’(Food Bridge)다. 고칼로리 음식을 단번에 끊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조리법과 재료를 바꿔가며 몸에 좋거나, 최소한 덜 해로운 음식을 먹도록 단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건강한 식습관으로 바꾸기 위한 중간 ‘다리’(bridge)’를 놓아줘야 한다는 뜻이다. 푸드 브리지는 고열량ㆍ고지방인 패스트푸드를 선호하고 채소를 기피하는 아이의 식성을 단번에 바꾸기는 힘들다는 전제 하에 단계적으로 식습관을 개선시키기 위한 교량이다.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 아이에게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가능한 한 덜 해로운 메뉴를 골라, 최소한으로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푸드 브리지는 대개 ①채소와 친해지기→②채소의 간접 노출→③채소의 소극적 노출→④채소의 적극적 노출 순서로 이뤄진다. 예로 시금치를 싫어하는 아이라면 ①시장에서 아이에게 직접 시금치를 구입하게 하기ㆍ뽀빠이 이야기 들려주기ㆍ‘울트라 시금치’ 등 시금치에 별명 붙여주기 ②시금치로 초콜릿 쿠키 만들기 ③김밥에 시금치를 넣어 간식 만들기 ④프라이팬에 식용유ㆍ견과류를 함께 넣고 볶은 시금치 먹이기 등으로 다리 넷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크림 스파게티 대신 토마토나 해산물 스파게티를 고르는 것이 낫다. 아이가 볶거나 튀긴 음식보다는 찌거나 구운 음식을 택하고, 구울 때 가능한 한 기름을 적게 쓴 음식을 택하도록 버릇을 들여야 한다. 피자를 주문할 때는 반죽 가장자리에 치즈를 집어넣은 것 대신 일반 피자를, 밑에 깔린 빵이 두꺼운 것(pan) 대신 얇은 것(thin)을 선택하도록 한다.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는 반드시 야채 샐러드를 함께 먹게 해야 한다. 그러나 샐러드에 뿌리는 드레싱은 현명하게 택해야 한다. 야채만 먹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100㎉를 넘기 어렵지만, 마요네즈를 쓴 드레싱은 한 술에 50~70㎉나 된다. 드레싱 다섯 술만 먹어도 공기밥 1공기와 맞먹는 셈. 올리브유를 사용한 산뜻한 드레싱을 택하는 것이 낫다.

오후 4시 이후 간식은 금물이다. 허기진 채 저녁 식탁에 앉게 해야 야채를 먹이기가 한결 쉽다. 아이가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버틸 때 강권해선 안 된다. 부모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왜 안 먹는지 모르겠다”며 직접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 그뒤 다음 식사 때 다시 권한다. 이런 식으로 15번 이상 반복하면 결국 먹게 된다. 

 푸드 브리지를 실시하면서 주의할 점도 몇 가지 있다. 첫째, 당근 등은 어린 아이의 목에 걸려 질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아이들이 특정 채소를 혐오하는 수준이라면 강요해선 안 된다. 그러면 해당 채소를 평생 기피할 수 있어서다. 셋째, ‘이 채소를 안 먹으면 장님 돼’ 등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백해무익이다. 
 
보통 사람의 식습관은 만 3~4세에 형성된다. 이 시기에 무엇을 즐겨 먹었느냐에 따라 평생 입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이들면 저절로 식습관이 바뀌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전처럼 외식이 연중 행사였던 때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 흔한 햄버거, 콜라, 피자, 치킨 등 패스트푸드 천국이 된 요즘에는 아이들의 식습관을 어릴 때부터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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