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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사육되는 소ㆍ돼지ㆍ닭ㆍ오리의 삶은 가혹
이 땅에서 사육되는 소ㆍ돼지ㆍ닭ㆍ오리의 삶은 가혹
  • 박태균
  • 승인 2020.11.0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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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식하면 동물 전염병의 전파 속도 가속
- 지나치게 비좁은 사육 공간이 가장 큰 문제

이 땅에서 사육되는 소ㆍ돼지ㆍ닭ㆍ오리의 삶은 가혹하다. 국내에서도 1999년부터 동물복지운동이 시작됐지만 소ㆍ돼지ㆍ닭 등 식용(농장) 동물은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돼 있다. 기껏해야 개ㆍ고양이 등 애완동물이나 야생동물ㆍ유기동물에 대한 관심 수준이다.

동물복지는 동물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는 동물권리 운동의 대안으로 나왔다. 육류 생산 등 동물 이용 행위는 수용하되 행위의 주체인 사람에게 윤리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물의 삶에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고통을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선 가축의 사육ㆍ운송ㆍ도축 등 전 생애에 걸쳐 동물복지가 외면당하고 있다. 동물복지의 주창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좁은 사육 공간이다. 가로 60, 세로 210의 스톨(stall, 칸막이)에 갇힌 암퇘지가 누워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은 보기에도 애처롭다. A4 용지 한장 크기의 배터리 케이지에선 암탉 두 마리가 평생 알만 낳는다. 계란을 덜 낳으면 12주나 사료 공급이 중단된다. 굶어서 털이 빠지면(강제 환우) 산란율이 약간 올라가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동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돼지의 경우 자동 급여되는 사료를 먹고 축사 한 귀퉁이에 마련된 배설 장소로 이동해 용변을 본 뒤 돌아와 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는 것이 거의 전부다. 땅을 파고 둥지를 트는 기본적인 습성마저 포기해야 한다. 이런 단조로운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은 대개 높은 공격성을 보인다. 코티솔 등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밀식으로 인한 축사 내 공기 오염과 스트레스는 동물을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면역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밀폐 환경에서 생활하는) 닭이 AI에 걸리면 집단 폐사하지만 야생 철새가 AI 감염으로 떼죽음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한국동물복지협회 조희경 상임대표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밀식하면 구제역 등 동물 전염병의 전파 속도도 빨라진다. 1967년 영국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일부 지역에 한정됐다. 반면 밀식이 보편화된 2001년의 구제역은 단 2주만에 스코틀랜드ㆍ웨일즈ㆍ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역에 확대됐다. 이 사건은 7개월간 600만마리의 가축이 살처분하고야 종료됐다.

식품안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밀식이 육류ㆍ계란 등의 항생제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간접 요인이기 때문이다. 사료 등에 항생제를 섞는 것은 면역력이 떨어진 동물의 폐사를 막고 체중을 빨리 늘리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동물복지에 신경을 더 쓴다고 해서 가축 질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동물에게 살만한 공간을 마련해주려면 고기ㆍ우유ㆍ계란 값을 지금보다 2030% 이상 지불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동물복지와 공장식 축산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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