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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한식 세계화, 반대입니다."
[톡톡톡] "한식 세계화, 반대입니다."
  • 푸드앤메드
  • 승인 2016.07.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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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①황교익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 이문예

“난 경제적으론 사회주의자, 정치적으론 자유주의자입니다.”

자신을 ‘빨갱이’라 불러도 좋단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55)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정치 색이 느껴졌다'는 기자의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기자 출신인 황교익은 말의 파괴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다.  자신의 주장을 돌려 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질문을 던지면 바로 거침 없이 답변했다. 그의 말투는 시원시원했지만 약간 아슬아슬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5월 20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푸드앤메드’가 황씨를 만났다.

나이 마흔에 ‘신의 직장’ 퇴직한 이유


언론인 지망생 사이에서 농민신문은 종종 ‘신의 직장’이라 불린다. 불안정한 기자 사회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처우가 좋아 붙여진 별칭이다. 대학을 막 졸업한 28세의 젊은 황교익은 12년 동안 농민신문 기자로 살았다. 나이 마흔에 부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눈엔 기자로 사는 삶의 결말이 보였다. 농민신문 임원은 농협중앙회에서 내려오는 게 관례였으니 자신이 오를 수 가장 높은 직책이 국장이라고 생각했다. 전문가에게 미래 컨설팅을 받았다. ‘마흔을 넘으면 다니던 회사를 절대 그만두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미련 없이 기자를 그만뒀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서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황교익이  ‘맛칼럼니스트’란 낯선 이름을 달고 갑자기 음식 분야로 고개를 밀어넣었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농민신문에서 발간하는 잡지 '전원생활' 기자로 지낼 때 이미 음식 분야에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당시에도 영화ㆍ음악ㆍ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평론가ㆍ기자가 있었지만 음식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걸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원생활' 데스크에게 무작정 잡지 4면을 향토음식으로 채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대학 때 전공은 음식과는 무관한 신문방송학이었지만 그때부터 전국의 온갖 음식을 맛보며 꾸준히 연구했다. 요즘은 음식 전문 기자나 맛칼럼니스트가 뜨고 있지만 당시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음식을 주제로 글을 써서 밥 벌어 먹고 살겠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어떻게 음식으로만 잡지 4면을 채우냐 반문하던 데스크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죠.”

“지구의 맛, 지옥의 맛. 맛 본 사람 있나요?”


음식과 식재료를 연구하기 위해 황교익은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다. 일주일에 평균 이틀 정도는 지방에 머물렀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는 다 맛봐야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할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음식을 먹고 연구했다. 황교익은 맛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신중하다. 그는 각각의 음식이 가진 고유의 맛들을 표현하기 위해 대중이 주로 쓰는 표현은 일부러 피한다고 했다.

“제가 안 쓰는 표현 중에 하나가 ‘담백하다’예요. 딱 하나, 두부 맛만큼은  ‘담백하다’고 말합니다. 다른 음식엔 ‘담백’이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않아요.”

음식에 대한 고정된 표현을 머리에서 지워버려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맛을 표현할 때 황교익의 철칙은 있다. 반드시 상대방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단어를 쓴다. 서양의 음식 프로그램을 보면 종종 ‘지구 같은 맛’, ‘지옥의 맛’ 등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극단적으로 음식을 표현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황교익은 자신의 블로그 '악식가의 대식일기'를 통해 많은 사람과 음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 블로그 '악식가의 대식일기' 화면 갈무리


“누가 지구를 맛본 적이 있나요? 지옥의 맛이 어떤 맛이죠? 난 직접 경험하지 못한 맛을 언급하기 싫어요. 대화 하려면 상대방의 감각과 공유할 수 있어야죠.”

전통과 영양 지나치게 강조하면 한식 발전 없어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소통의 도구로 생각한다는 그다. 황교익이 소통하기 힘든 두 부류가 있다. 바로 전통과 영양을 너무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두 부류가 한국 음식 문화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전통을 강조하는 인사 중엔 ‘현재의 음식을 버리고 우리 조상이 드셨던 음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반문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 도대체 언제부터를 말하는 건가요?”

황교익은 “‘전통’은 근대 국가가 성립하면서 정체성을 형성을 위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전통 음식을 고수하자는 주장이 오히려 한식을 조선 시대 음식 정도로만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영양을 너무 앞세우는 전문가가 한국의 음식 문화를 비틀어놓고 있다고도 했다. 종편 방송이 시작되면서  TV엔 몸에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 가지 식재료를 두고 여러 가지 효능을 언급하며 툭하면 동의보감을 들먹인다.

“동의보감 읽어봐요. 거기 안 나오는 식재료가 뭐가 있나, 다 나오지. 탈이 나지 않는 한 골고루 먹으면 그만예요”

너무 영양만을 강조하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게 하고 음식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막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골고루 먹고 음식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뻗쳐 나가는 것이 한식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식 세계화는 ‘파쇼적’ 사고"


한식 세계화에 대한 생각을 묻자 황교익은 고개부터 절래절래 흔들었다.

“한식의 세계화처럼 파쇼(극단적 전체주의적 이념을 다루는 운동이나 경향)적인 것이 어디 있나요? 세상에 정부가 나서서 다른 나라에 내 나라의 음식을 주입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예요.”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국가 주도적 한식 세계화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 이문예


한 나라 국민의 삶과 정체성이 담긴 음식을 다른 나라 국민의 삶에 녹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상한 일이란 것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한식 세계화를 이끄는 것을 두고는 “세계 모든 국가가 포기한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이상한 꼴”이라고도 평가했다. 한식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을 마치 애국하지 않는 사람인 양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인격적 살인을 일삼는 것이 나치와 다를 바 없다’고 표현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강한 발언으로 곤란을 겪는 일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 분위기가 문제라고 봐요. 난 사회적 관념에 따라 지탄받을만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를 전복하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의견을 내는 것인데 도대체 뭘 두려워해야 하죠?”

이문예 기자 moonye23@foodnmed.com

(저작권 ⓒ ‘당신의 웰빙코치’ 데일리 푸드앤메드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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