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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꿔 타기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꿔 타기
  • 박태균
  • 승인 2021.07.30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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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에서 한 해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경제가치 손실 25조원 이상
 - 유통기한을 판매기한으로 오해하는 소비자 수두룩
 - 일본ㆍEUㆍ호주ㆍ캐나다 등엔 유통기한 표시제 없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경제가치 손실은 25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곡물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진 지도 이미 꽤 오래 됐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대부분의 국가가 외면하고 있는 식품 관련 표시제 하나를 우리는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가공식품에 거의 빠짐없이 기재된 ‘유통기한’ 말이다. 지금도 국내 소비자가 마트에서 식품을 고를 때 ‘유통기한’은 가장 먼저 확인하는 표시다. 당장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면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야 할지, 그냥 먹어야 할지 고민되는 제품이 어느 가정이나 몇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통기한이 경과해 폐기되는 가공식품의 폐기비용이 연간 1조3,000억원 이상이란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2002년 추정). 소비자가 유통기한 경과 식품을 소비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를 판단할 때 각자의 유통기한 관련 지식과 동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한국심리학회지 2016년). 유통기한 관련 지식이 많고 평소 위험을 잘 감수하는 성향의 사람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지 않고 먹을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 소비자의 유통기한에 대한 ‘맹신’이 높은 것과 비례해 오해도 쌓이고 있다. 유통기한을 판매기한ㆍ사용기한ㆍ품질유지기한을 모두 포괄한 용어로 잘못 알고 있는 소비자가 수두룩하다. 유통기한 관련 지식수준이 떨어져 기한 경과 식품을 앞뒤 따지지 않고 음식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기 일쑤다.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제품을 발견한 소비자는 폐기 또는 섭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따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늘 망설이게 된다. 유통기한을 ‘관대하게’ 인식해 기한 지난 식품을 소비했다간 가족 건강과 안전에 해가 될까봐, 반대로 너무  ‘엄격하게’ 해석해 기한 경과 식품을 버리면 자원 낭비가 될까봐 진퇴양란이다.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이 10일인 식품을 냉장 또는 냉동 등 표기된 대로 보관하면 그 1.5배인 15일까지는(유통기한 5일 경과) 섭취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제품과 편의점 판매 식품에 대한 유통기한 경과 후 품질 변화를 추적한 연구에서도 시판 식품은 표기된 보관법만 준수하면 기재된 유통기한의 0.5배가량 지나도 품질과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소비자에겐 식품 살 때 단연 최고의 정보로 꼽히는 유통기한이지만 의외로 외국에선 ‘맥’을 못 쓴다. 일본ㆍEUㆍ호주ㆍ캐나다 등엔 유통기한 표시제 자체가 없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 유제품의 유통기한 표기만 의무화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의 가게에서도 유통기한이 표시된 제품을 구경할 수 없다. 이처럼 해외에서 유통기한 표시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이 제도가 불필요한 식품 폐기를 유인해 음식물 쓰레기양을 대폭 늘린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엔 UN 산하기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유통기한 표시가 소비자 오인 우려가 있다며 식품 표시규정에서 삭제했다.


 유통기한의 대안으로 최근 부각되고 있는 것이 소비기한이다. 일반적으로 소비기한은 식품의 부패시점 × 안전계수(0.9)이므로, 부패시점 × 안전계수(0.7)인 유통기한보다 길다. 식품업체 입장에서 보면 식품 생산 후 더 오래 시장에 유통시킬 수 있다. 소비기한은 국내 소비자에겐 생소하지만 미국ㆍEUㆍ일본 등 선진국에선 이미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너무도 익숙한 유통기한이지만 이제 손 볼 때가 됐다. 우리의 식재료 사정을 고려하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도 여겨진다. 최근 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처ㆍ한국소비자원ㆍ국회 등에서도 소비기한 제도 도입과 관련해 전향된 모습이 감지되고 있는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식량위기ㆍ식량안보 문제가 부각된 것도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갈아타기에 좋은 조건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 뿐아니라 어떤 방식을 택할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함께 표시해야 한다는 방안, 소비기한만 표시해야 한다는 방안 등이다. 소비기한 말고 소비자에게 더 확 와 닿는 명칭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쳐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명칭은 한 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힘들다. 미국 식품의약청(FDA)는 2019년5월 식품 섭취 기한에 대한 표기를 ‘Best If Used By’로 일괄 통일할 것을 제안했다. 소비자를 헷갈리게 하는 다양한 표기 때문에 아직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많다고 봐서다. FDA는 미국에서 버려지는 식품이 매년 1,610억 달러 규모이며 이 중 20%가 소비기한 표기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발표했다. 소비기한 도입을 논의할 때 식량자급률 등에서 사정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식품 섭취기한 제도를 잘 뜯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은 품질변화 속도가 빨라 5일 이내에 소비돼야 하는 제품은 소비기한, 품질변화 속도가 이보다 느린 제품은 상미기한으로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표시광고법` 등 관련 규정 개정 추진을 통해 소비기한을 적용하는 것은 식품업계는 물론 그 재료를 제공하는 농업계 입장에서도 일단 반길 일이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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