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창/정혜경] 궁중에서 민간
으로 넘어간 초계탕

뜨거운 음식에서 찬 음식으로 바뀌어

혜경궁 홍씨의 2월 회갑연에 오른 음식

글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

 GettyImages-a10329167

음식 사랑이 유난한 민족답게 여름이면 으레 유명 삼계탕집 앞엔 긴 줄이 선다. 여름엔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이 빠진다고 생각한 탓인지 삼계탕ㆍ보신탕ㆍ추어탕 등 뜨거운 음식이 주를 이룬다. 최근엔 초계탕(醋鷄湯)을 여름철 보양식으로 찾는 이도 많아졌다. 과거 궁중에서 초계탕은 뜨거운 음식이었다. 근대기 이후 닭을 주원료로 해 만드는 찬 육수의 초계탕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가 재미있다.

과거의 초계탕 조리법을 보면 닭을 토막 내어 끓이다가 외(옛날 오이)ㆍ석이ㆍ표고ㆍ목이 등을 골패쪽으로 썰어 볶아 넣고 알고명으로 넣은 국이다. 귀한 식재료였던 닭을 포함해 쇠고기ㆍ석이ㆍ표고ㆍ오이 등을 이용해 만드는 화려한 음식이었다. 궁중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었지만 차게 먹진 않았다.

조선시대 왕실의 경사를 기록한 ‘연향의궤’는 현재 20여 종 이상 남아 있다. 이중 7개의 연향의궤에 초계탕이 등장한다. 1795년 2월,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차린 회갑연을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도 초계탕이 나온다. 여름이 아닌 추운 2월의 행사 음식이었다.

연향의궤에서 초계탕은 해가 갈수록 다양한 재료가 첨가돼 화려한 음식으로 변모한다. 초기엔 닭고기와 계란ㆍ파ㆍ초가 주재료였으나 나중엔 해삼ㆍ전복ㆍ쇠고기ㆍ소의 온갖 내장ㆍ석이ㆍ표고ㆍ도라지ㆍ미나리ㆍ녹말ㆍ간장ㆍ식초 등이 재료로 사용된다.

조선의 민가에서도 초계탕을 먹었을까? 1700년대 조리서인 ‘증보산림경제’에 등장한 이후 250여 년간 각종 문헌에 꾸준히 소개된다. ‘증보산림경제’엔 “살찐 암탉과 파 흰 부분을 솥에 넣고, 좋은 식초와 청장과 참기름을 부은 뒤 센불과 약한 불로 푹 고아 닭뼈가 발라질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른 뒤에 달걀 6∼7개를 국물에 풀어 먹으면 그 맛이 매우 좋다”고 기술돼 있다. 초계탕이 처음부터 찬 육수의 형태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910년대 이후에 나온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과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 등에도 초계탕이 등장한다. 여기선 여름에 차갑게 먹는 음식의 하나로 소개된다. 닭고기를 뼈째로 토막 내고 잘게 썬 쇠고기와 함께 간을 맞춰 끓여서 식힌 뒤 오이ㆍ석이ㆍ표고 볶은 것과 달걀로 고명을 만들어 얹고 초를 쳐서 먹는, 국물이 있는 냉국의 일종이란 것이다.

1960년 이후엔 여름 접대음식 혹은 여름 보양식으로 초계탕이 일간지에 계속 소개된다. 신문의 맛집 소개란에도 초계탕을 하는 곳이 빠지지 않았다. 아마도 궁중의 화려한 음식이던 초계탕은 조선 왕실이 해체된 일제 강점기 이후 한정식을 팔던 명월관 등을 통해 민간에 전해졌을 것이다. 조리법이 비교적 간단한 삼계탕은 서민의 여름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초계탕은 더 고급스런 여름 보양식으로 명맥을 이어 왔다.

북한의 향토음식으로도 유명

초계탕은 북한 향토음식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초계탕은 북한의 함경ㆍ평안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먹던 별미였지만 요즘엔 여름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다. 닭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신선한 채소, 전복ㆍ해삼 등 해산물, 참깨ㆍ잣 등 양념을 이용해 만든 북한식 초계탕을 먹으면 담백한 맛과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이 음식은 저칼로리 음식으로, 메밀국수를 함께 말아 먹으면 더욱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