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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식품 시리즈 - 5. 고기와 생선의 독을 해독하는 들깨
장수식품 시리즈 - 5. 고기와 생선의 독을 해독하는 들깨
  • 박태균
  • 승인 2019.05.30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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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식품 시리즈 - 5. 고기와 생선의 독을 해독하는 들깨
장수식품 시리즈 - 5. 고기와 생선의 독을 해독하는 들깨

-바다에 참치가 있다면 육지엔 이것

-순대국과 잘 어울리는 들깻가루
 
 “열려라 깨.”
 ‘아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나오는 이 주문(呪文)에서의 깨는 참깨일까? 들깨일까?
 참깨(Open sesame)다. ‘Open perilla’(열려라 들깨)를 외쳤다면 도적들의 바위문은 절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참깨와 들깨는 깨라는 단어를 공유하지만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참깨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엔 들깨를 깨라고 했는데 나중에 참깨에 밀려 들(野)자가 붙게 됐다는 설도 있다.
  들깨는 씨앗이다. 그 잎이 깻잎이다. 깻잎을 참깨의 잎으로 오인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깻잎은 차조기(紫蘇)의 잎과 모양이 닮았다. 들깨의 다른 이름이 야소(野蘇)ㆍ백소(白蘇)인 것은 이래서다. 들깨를 짜면 들깨 기름(들기름)이 얻어진다. 들깨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것이 깻묵이다. 깻묵은 사료나 비료로 이용된다. 
 태생이 같은데도 들깨는 씨앗류, 깻잎은 채소류, 들기름은 유지류로 분류된다. 
 들깨는 버릴 게 없는 식물이다.
 깻잎은 양념ㆍ장아찌ㆍ쌈 채소로 인기가 높다. 불고기ㆍ갈비ㆍ생선회 먹을 때 대개 깻잎으로 쌈을 한다. 맛과 향이 진하고 고소해서 냄새가 강한 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깻잎의 리모넨 등 향기 성분은 생선ㆍ고기의 비릿한 냄새를 없애준다. 
 중국의 고의서인 '본초강목'엔 “깻잎은 고기와 생선의 온갖 독을 해독한다”고 쓰여 있다. 
 깻잎의 ‘해독 성분’을 현대 의학ㆍ영양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베타카로틴(체내에 들어가서 비타민 A로 전환)의 효과로 여겨진다. 고기ㆍ생선을 태우면 PAH 등 발암성 물질이 생기는데 깻잎에 풍부한 베타카로틴이 이를 어느 정도 상쇄해주는 셈이다.   
 베타카로틴은 항산화ㆍ항노화 성분이자 항암 성분이다. 식물의 노란색 색소 성분이기도 하다.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식품으로 흔히 당근 등 옐로 푸드를 떠올리는 것은 이래서다. 그런데 깻잎엔 베타카로틴(100g당 9.1㎎)이 당근(7.6㎎)ㆍ단 호박(4㎎)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는 우리 국민이 즐겨 먹는 채소 30여종의 암 예방효과를 비교했다. 이중 깻잎은 가장 강력한 항암 채소중 하나로 밝혀졌다.  
 채소로는 드물게 칼슘 함량이 높다는 것도 깻잎의 장점이다. 100g당 칼슘 함량이 211㎎으로 ‘칼슘의 왕’이라는 우유의 거의 두 배이다. 붉은 상추ㆍ청정채 등 다른 쌈 채소에 비해서도 배나 많다. 칼슘 섭취가 부족한 노인에게 깻잎ㆍ깨나물(깻잎나물)을 추천하는 것은 그래서다. 
 한국ㆍ일본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은 깻잎을 먹는 채소로 치지 않는다. 일본인도 엄밀히 말하면 깻잎과 비슷하게 생긴 자소 잎을 즐겨 먹는다. 생선회 요리를 장식하거나 튀김과 함께 먹는다.
  씨앗류의 일종인 들깨는 표면이 셀룰로오스라는 물질로 덮여 있다. 그대로 먹으면 소화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된다. 영양학자가 “들깨는 씨앗 채 먹지 말고 볶아서 빻아 먹으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단 일단 빻고 나면 산화가 빨리 진행되므로 먹기 직전에 필요한 양만 볶아서 빻는 것이 좋다.
  들깨의 가루는 100g당 지방 함량이 40g에 이를 만큼 ‘지방덩이’다. 삼겹살보다 지방 함량이 높은 고지방 식품이다. 하지만 혈관 건강에 유익하다. 삼겹살의 지방은 대부분 혈관 건강에 해로운 포화 지방이지만 들깨의 지방은 거의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불포화 지방이어서다.  
 “바다에 참치가 있다면 육지엔 들깨가 있다”는 말이 있다.
 도대체 두 식품이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까? 둘 다 오메가-3 지방(불포화 지방의 일종)이 풍부하다.
 덴마크 북극환경의학센터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고기 등 서구식 식생활을 하는 덴마크 사람들은 오메가-3 지방이 풍부한 그린란드 사람보다 심장병이나 염증성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10배나 높았다. 연구팀은 물개와 등 푸른 생선을 즐겨 먹는 것이 그린란드인이 더 건강한 비결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에서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대장암은 쇠고기ㆍ돼지고기 등 적색육의 섭취가 많을수록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들깻가루를 먹였더니 대장암 발생이 억제됐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들깨는 피부 미용도 돕는다. 들깨에 풍부한 오메가-3 지방이 혈액 순환을 도와 각종 영양분이 말초 혈관까지 원활하게 공급돼서다. 로즈마린산ㆍ루테올린 등 항산화 성분이 많이 함유된 것도 피부 건강에 이롭다. 로즈마린산은 로즈마리ㆍ페퍼민트ㆍ스피어민트 등 허브에 든 유용한 성분이다. 피부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피부에 해로운 세균ㆍ바이러스를 죽인다. 루테올린은 기미ㆍ주근깨의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인 티로시나제의 활성을 억제한다. 주근깨ㆍ기미가 많거나 피부가 거칠거나 햇볕에 탄 뒤 회복이 안 돼 고민인 여성에게 추천할 만하다.
 한방에선 들깨를 면역력을 높여주는 식물로 친다. 『동의보감』엔 “성질이 따뜻하고 독이 없다. 맛이 시고 기(氣)를 내려주며 간(肝)을 보한다. 들깨로 죽을 끓여 먹으면 기운을 돋워주고 몸을 아름답게 가꾸어준다”고 쓰여 있다. 
 들깻가루는 순댓국과 잘 어울린다. 순댓국에 뿌리면 순댓국의 냄새를 잡아준다.
 참깨를 짜면 참기름, 들깨에선 들기름이 나온다. 둘 다 불포화 지방 비율이 높아 혈관 건강에 이로운 기름으로 알려졌다. 참기름엔 불포화 지방 중에서도 오메가-6 지방의 일종인 리놀레산이 많다(40%). 이와는 달리 들기름엔 오메가-3 지방의 일종인 알파 리놀렌산(AHA)이 많이 들어 있다. AHA는 체내에 들어온 뒤 EPA나 DHA(둘 다 오메가-3 지방)로 바뀐다. 고등어ㆍ꽁치ㆍ참치ㆍ정어리 등 등 푸른 생선의 웰빙 성분으로 유명한 바로 그 DHAㆍEPA다.
 DHAㆍEPAㆍALA 등 오메가-3 지방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서 동맥경화ㆍ고지혈증ㆍ심장병ㆍ뇌졸중 등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기여한다. 들기름이 최근 장수를 돕는 웰빙 식용유로 인기를 모으는 것은 이래서다. 오메가-3 지방은 또 학습능력을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다. 우리 국민의 영특함은 들깨ㆍ들기름ㆍ깻잎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요즘 미국에선 암 예방 식용유로 아마인유(아마씨유)가 뜨고 있다. 아마인유와 들기름(들깨기름)도 닮은 데가 많다. 식용유 중에선 들기름(60%)ㆍ아마인유(58%)ㆍ콩기름(8.2%)ㆍ옥수수기름(1.6%)의 순서로 오메가-3 지방의 비율이 높다(괄호 안은 전체 지방 중 오메가-3 지방의 비율). 웰빙 식용유로 알려져 비싸게 팔리는 올리브유엔 오메가-3 지방이 거의 없다. 
 하지만 들기름도 두 가지 약점이 있다. 
 첫 번째는 공기 중에 내놓으면 빠르게 산화한다는 것이다. 들기름이 산화하면 유해한 과산화 지질로 변한다. 따라서 들기름은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특히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은 절대 오래 보관하면 안 된다. 들기름은 튀김ㆍ볶음 같이 고열이 가해지는 요리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기를 찍어먹거나 샐러드 등의 요리에 이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두 번째 아킬레스건은 지방 함량이 99% 이상이고 그만큼 열량이 높다는 사실이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음식을 조리할 때 들기름을 과다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혈관 건강에 이롭다는 오메가-3 지방도 1g당 9㎉를 내기는 포화 지방과 다를 바 없다. 들기름이 웰빙 지방인 오메가-3 지방이 풍부하다고 해서 양껏 먹다간 ‘만병의 근원’이라는 비만을 부르게 된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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