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9:43 (목)
친근한 듯 낯선 듯 멧돼지 고기
친근한 듯 낯선 듯 멧돼지 고기
  • 박태균
  • 승인 2021.04.21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방 적고 담백한 것이 특징, 판매∙유통은 금지
- 고래고기와 식감 비슷해 일본에서는 ‘산고래’라고 불려…

 

 

 

최근 도심까지 출현해 주민을 위협하는 멧돼지는 길이 1∼1.8m, 몸무게 100∼300㎏의 잡식성 포유류다. 행동반경은 4∼8㎞에 이르고 수명은 5년 안팎이다. 생후 1년 반이 지난 뒤 겨울에 짝짓기를 시작하고 한 번에 새끼 3∼8마리를 낳는다. 남한 면적의 30∼40%에 서식한다. 만약 멧돼지를 산 등에서 우연히 만나면 놀라지 말고 나무나 바위 뒤로 숨어야 한다.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성난 멧돼지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사냥으로 잡은 멧돼지의 고기는 먹어도 괜찮다. 판매ㆍ유통은 금지돼 있다. 시중의 멧돼지고기는 대부분 멧돼지와 집돼지 교잡종의 고기다. 일부 농가에선 집돼지가 멧돼지와 교배해 새끼를 낳아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멧돼지고기가 돼지고기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예부터 멧돼지고기는 집돼지고기처럼 즐겨 먹던 육류였다. 임금이 고위 관리에게 멧돼지고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쓴 농업 백과사전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동물로 소ㆍ돼지(집돼지)ㆍ개ㆍ양ㆍ멧돼지ㆍ곰ㆍ산양ㆍ사슴ㆍ고라니ㆍ노루ㆍ토끼를 꼽았다. 18세기 유학자 유중림이 저술한 농업서적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선 멧돼지가 12월의 제철 식재료였다.

멧돼지고기는 맛이 쫄깃하고 담백하지만, 지방이 적어 질긴 편이다. 돼지고기 지방을 씹을 때의 약간 탱탱한 식감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비계 맛도 쫀득쫀득해 물컹물컹한 일반 돼지비계와 구분된다. 뒤끝은 산뜻하고 개운한 편이다.

멧돼지고기 100g당 지방 함량은 19.8g(앞다리 10.7g)으로 돼지고기 삼겹살(28.4g)이나 앞다리 고기(12.3g)보다 낮다. 멧돼지고기에 지방이 적은 것은 평소 운동량이 많아서다. 돼지와는 달리 혹독한 환경에 노출된 멧돼지는 생존을 위해 시속 45㎞의 속도로 내달린다.

‘구워 먹을 때 고기가 뜨거우면 돼지고기, 뜨겁지 않으면 멧돼지고기’란 말도 있다. 이는 지방이 많은 돼지고기에선 열기가 느껴지고 지방이 적은 멧돼지고기는 뜨겁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멧돼지로 불고기를 만들어 먹으면 돼지고기보다 약간 쓴맛이 난다고 한다. 멧돼지는 노릿한 냄새가 있어 조리하기가 까다롭다. 특히 수육으로 조리하면 누린내가 느껴진다. 멧돼지고기의 육색(肉色)은 돼지고기보다 선홍색이 진하다. 비계가 적고 전체 지방 중 불포화 지방의 비율이 높아 심장병ㆍ뇌졸중 등 혈관 질환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일본에선 멧돼지고기를 ‘산고래’(山鯨)라 부른다. 고래고기와 식감이 비슷하다고 봐서다. 저돌적인 멧돼지의 속성 때문인지 예부터 자양강장에 효과적인 고기로 여겼다. 유대교ㆍ이슬람교에선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멧돼지고기도 금기 식품이다.

맛이 깊고 담백해 한번 맛 들이면 다른 고기는 싱겁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많다. 사냥꾼이나 산꾼에게 멧돼지고기에 관해 물으면 엄지를 척하고 내민다. 냄새가 실내에 배지 않고 밥상이나 바닥에 튄 기름(지방)이 쉽게 닦이는 것도 멧돼지고기의 특징이다.

멧돼지고기를 먹을 일이 있다면 기생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멧돼지고기를 먹은 경기도의 한마을 주민 20여 명이 집단으로 선모충이란 기생충 질환에 걸려 치료받은 사례가 있다. 선모충은 회충의 일종으로 주로 돼지고기를 덜 익힌 상태로 먹을 때 감염된다. 멧돼지ㆍ돼지 외에 오소리ㆍ개ㆍ쥐에도 기생한다. 멧돼지 고기를 먹다 선모충에 감염돼도 초기 증상이 감기나 복통과 비슷해 원인을 찾기 힘들다. 방치하면 근육통ㆍ마비 등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멧돼지고기나 돼지고기를 날로 먹은 뒤 특별한 이유 없이 열ㆍ근육통ㆍ복통ㆍ얼굴 부종(浮腫)ㆍ결막하 출혈 증세가 보이면 선모충 감염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선 멧돼지고기를 먹은 사람이 간염에 걸린 사례도 있다. 멧돼지 담즙ㆍ노루 생고기 등을 먹은 사람이 지난해 유럽에서 발생해 큰 우려를 샀던 E형 간염에 걸린 적도 있다. 선모충이나 간염의 가장 확실한 예방법은 멧돼지고기를 잘 익혀 먹는 것이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