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9 12:57 (목)
‘청결’이 독이다? A형 간염 증가와 ‘위생가설’ 
‘청결’이 독이다? A형 간염 증가와 ‘위생가설’ 
  • 박태균
  • 승인 2020.11.09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나치게 위생적인 삶은 질병에 취약하게 하는가? ‘위생가설’ 주목
- 자연 환경과의 접촉 통한 면역성 길러야 

 

 

 


몇 년 전부터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A형 간염 환자 10명 중 7명(72.6%)은 30, 40대다. 이는 30, 40대의 A형 간염 항체 양성률이 유독 낮기 때문이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당시 20대의 A형 간염 항체 양성률은 12.6%로 전체 연령 중 가장 낮았다. 30대가 31.8%로 두 번째로 낮았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은 어릴 적 A형 간염을 앓아 대다수가 항체를 갖고 있었다. 

A형 간염 환자가 최근 늘고 있는 것은 요즘 30, 40대가 부모 세대보다 위생적으로 살아온 탓에 몸 안에 항체가 없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나치게 위생적인 삶이 오히려 질병에 취약하게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 그것이다.  누구나 위생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위생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병에 취약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이 위생가설의 요체다. 대표적인 후진국 병인 A형 간염이 요즘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알레르기 질환의 증가세도 위생가설로 잘 설명된다. 독일 통일 전 이야기다. 동독 지역에 있던 드레스덴은 서독의 함부르크보다 공기오염이 높았지만 이곳 어린이의 아토피성 피부염 등 알레르기 질환 유병률이 훨씬 낮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드레스덴 어린이의 알레르기 질환 발생률은 함부르크 어린이와 차이가 없어졌다. 일부 전문가는 동독 시절엔 ‘더러운 옷과 신발’이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줬는데 통일 후 위생상태가 개선된 것이 오히려 알레르기 질환 유병률을 높였다고 풀이했다. 통일 후 드레스덴 어린이의 패스트푸드 섭취량이 늘어난 것도 알레르기 질환 발생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선진국 어린이의 아토피성 피부염 유병률(20%)은 저개발국 어린이(2%)의 10배에 달한다. 형제가 많아 방과 물건을 함께 쓰며 자란 아이가 아토피나 천식에 덜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알레르기는 다루기 힘든 질환이다. 발생원인을 놓고도 여러 가설이 제기됐는데 위생가설도 그중 하나다.  

어린이의 면역 시스템을 튼실하게 하려면 세균을 포함한 외부 물질의 자극이 필요한데 아이 때 이런 자극을 받지 못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아토피ㆍ천식ㆍ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에 걸리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코흘리개가 많았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 아이는 너무 청결한 환경에서 자라서 각종 알레르기 반응에 오히려 더 민감해졌다는 해석이다. 주거 환경이 깔끔해지고 백신ㆍ항생제를 과할 정도로 사용하며 도시 주민의 비율이 늘어나고 형제 등 가족 수가 줄어들면서 사람끼리 서로 세균ㆍ바이러스 등을 옮길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위생가설의 주창자는 “요즘 어린이는 오염된 물ㆍ흙 등과 자주 접촉할 기회가 없어 세균ㆍ집먼지진드기ㆍ곰팡이 등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몸에 들어왔을 때 이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위생가설은 과거보다 위생 상태가 훨씬 나아진 요즘에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를 근거로 여러 나라에서 “흙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를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만 키우지 마라”, “흙ㆍ가축ㆍ애완동물을 만지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뛰놀게 하라”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많다.

반론도 만만찮다. 반대론자는 “그렇다면 아이들을 마구간에서 살게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냐”고 반박한다. 

실제로 위생가설로는 아이에게 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경우도 수두룩하다. 

위생가설은 아직 가설이다. 이를 맹신해 어린이를 일부러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환경으로 내몰 필요는 없다. 다만 아이의 면역 시스템의 성숙과 균형에 장애를 초래하거나 아이 몸 안에 있는 적절한 세균 방어 막을 깨뜨릴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인위적인 위생환경과 습관은 자녀의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위생가설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아이가 손을 자주 씻거나 몸을 청결히 하는 것조차 막아서는 안 된다. 아이의 면역력을 키워주려면 자연 환경과의 다양한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이 위생가설의 핵심이다. 


박태균 기자 fooding123@foodnmed.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