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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땅 남극에서 한식과 채소 맛봤어요.”
“혹한의 땅 남극에서 한식과 채소 맛봤어요.”
  • 박하연
  • 승인 2021.09.14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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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류 생태학 박사가 들려주는 남극 식단
- 눈보라 속 국적 뛰어넘어 식문화 공유
- 풋고추 하나 선물 받고 ‘감동’…매워도 맛있었다

 

남극 월동 식단 (사진 제공 사진 남극세종과학기지 25차 월동대 김연태)
남극 월동 식단 (사진 제공 = 남극세종과학기지 25차 월동대 김연태)

 

 지난 2일 농촌진흥청은 실내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로 애호박 된장찌개ㆍ오이냉국 등을 요리한 남극세종과학기지 대원의 소식을 전했다. 세종과학기지 내 본격적인 열매채소 재배와 수확은 우리나라 남극 진출 이후 최초의 일이다. 사시사철 얼어붙은 혹한의 땅 남극에서 들려오는 푸른 소식을 더 자세히 전하기 위해 남극 식생활을 직접 경험했던 국립생태원 정진우 박사(조류생태학)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착한 펭귄 사나운 펭귄 이상한 펭귄’의 저자이자 펭귄의 일상을 담은 SNS로 알려진 정 박사는 2011년 8월~2019년 7월까지 만 8년 동안 국내 유일의 극지 연구 전문 기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부설 극지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다음은 농촌진흥청의 새 소식에 기분 좋은 추억담을 꺼내든 정진우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Q. 남극이라면 혹독한 환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열량이 높은 식단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 것 같다. 남극의 식사는 보통 어떤 식으로 준비되나?

- 남극 식단이라고 해서 한국과 크게 다르진 않다. 월동대와 하계연구원을 위한 식품 대부분이 쇄빙선 ‘아라온호’와 항공화물을 통해 남극으로 공수되기 때문에 한식 위주의 식단을 즐길 수 있다. 음식은 모두 월동대 요리사가 조리한다. 일 년 치 음식을 한국에서 가져가는 방식이므로, 채소는 늘 부족하다. 간혹 중간 보급을 통해 신선식품(채소ㆍ고기ㆍ계란ㆍ우유 등)이 들어오긴 하지만, 부족하다. 특히 3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남극의 겨울엔 중간보급이 어려워 신선식품을 먹기가 더욱 어렵다. 다행히 한식엔 장기보관이 가능한 김치 종류가 많아 대체가 가능하다.

 

 

남극 월동 식단 (사진 제공 = 남극세종과학기지 25차 월동대 김연태)
남극 월동 식단 (사진 제공 = 남극세종과학기지 25차 월동대 김연태)


 기지가 아닌 야외에서 보내는 캠핑 기간엔 한국과 기지에서 보급받은 식자재로 요리를 해먹는다. 이때도 주식은 한식이며, 캠핑이다 보니 간단히 데우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을 많이 먹는다. 최근엔 품질 좋은 국산 레토르트 식품이 많아 외국인에게 국산을 자랑한 적도 있다.

 

Q. 세종과학기지 내 열매채소 재배 수확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직접 재배한 채소는 무엇인가?

 쌈 채소가 대부분이었다. 세종기지와 장보고 기지 모두 과거부터 기지 내 식물공장을 운영했다. 상추가 가장 많았고, 열매채소론 고추 한두 그루를 재배했다. 열매채소는 쌈 채소보다 공간과 시간을 많이 차지하고, 그에 비해 수확량은 적은 편이다. 남극 내 식물공장 내부의 온도 유지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식물공장 내 열매채소 재배가 다양해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Q. 남극에서 채소를 어떻게 재배했나?

 한국에서 가져간 인공토양을 활용, 기본적으로 수경재배를 했다. 역시 한국에서 가져간 멸균 씨앗을 인공토양에 심어 주기적으로 관리했다. 채소가 많이 자라면 솎아주기도 했다. 2010년~2018년 거의 매해 남극을 갔는데, 매년 재배 담당자에 따라서 수확량이 달랐다. 아무래도 농사다 보니 경험이 있거나, 식물을 잘 아는 분이 맡으면 더 많은 수확량이 나왔다. 기른 채소의 종류는 대부분 쌈 채소였다. 기지 내 월동대원이 선호하는 작물을 주로 키웠다.

 

Q. 키운 채소는 어떻게 조리됐나?

신선한 채소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은 조리되지 않은 생채소 상태로 먹었다. 채소 수확 날엔 주로 삼겹살파티를 했다. 채소가 많지 않으니, 이 파티의 주인공은 고기가 아니라 채소였다. 수확량이 적은 날엔 월동대 조리원이 채소를 직접 배급해야 했던 적도 있다. 채소가 나오는 날은 기지 내 모든 대원이 즐거워하는 날이었다. 소량재배한 고추는 국요리에 맛을 살리는 양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남극에서 약 5개월을 보내고 신선한 채소가 생각날 무렵 친한 월동대 요리사가 아껴둔 풋고추 1개를 선물로 준 적이 있다. 그 하나를 너무나 아껴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청양고추였는지 엄청 매워 기침이 날 정도였지만 아주 맛있게 먹었다.

 

Q. 기지 내에서 식사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크게 힘들었던 적은 없다. 월동대 요리사가 워낙 잘 챙겨줘 항상 맛있게 먹었다. 오히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잘 먹으니, 살이 찌는 대원도 많았다. 고생하는 요리사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선한 채소가 없는 날도 한식엔 다양한 김치가 있으니, 채소를 대신 할 수 있었다. 배추김치ㆍ무김치 뿐만 아니라 갓김치까지 다양한 종류를 먹을 수 있어 남극에 채소가 없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요리사가 쉬는 주말엔 간단한 음식을 직접 조리해 먹었다. 라면을 먹더라도 주방 냉장고에 항상 김치와 간단한 밑반찬이 준비돼 있어 한국의 집에서보다도 잘 먹고 지냈던 것 같다.

 

Q. 최근 세종과학기지 내 새로운 채소 수확 소식을 들었을 때의 소회는?
 
 2019년부터 극지연구소를 떠나 국내 연구기관에 머무르게 된 입장에서, 때때로 남극기지가 그립다. 최근에 친한 월동대원 소식과 남극기지의 발전을 듣고 나니, 대원이 생활하기에도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남극기지 내 채소를 재배하는 국가가 미국과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엔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남극을 방문해, 남극에서 재배한 채소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혹 외국인 대원이 한국 기지를 방문하는 일이 있다. 외국인의 입에 맞지 않는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하는 예는 있었지만, 우리 기지 음식을 꺼리는 외국인 대원은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다양한 식재료가 나오는 덕에 우리와 함께 활동했던 외국 연구자 중 한 명은 한식의 매력에 푹 빠져 김장을 계획하기도 했다. 약 열흘간 외국인 연구자와 함께 캠핑을 한 적도 있다. 음식을 모두 한식으로 준비했지만 남기는 사람 한 명 없이 모두 맛있게 먹었다. 식사 때마다 나오는 음식에 대해 재밌게 이야기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박하연 기자 mintyeon34@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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